26년 공간:일리의 연간 프로젝트 규방-가사는 젠더–생태–기술이라는 세 축 중 마지막 주제인 ‘기술’을 중심으로 전개된다.그 첫 번째 전시 《화전가》는 조선 후기 여성들의 공동 창작 형식인 규방가사 <화전가>를 출발점으로, 박슬기 작가가 그리는 “꽃”을 통해 디지털 이미지와 회화, 그리고 기록의 방식이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탐색한다. <화전가>는 여성들이 봄날 산이나 들에서 화전놀이를 즐기며 가사를 짓고 낭송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규방가사로, 현장 창작, 윤작과 낭송, 사후 기록이 교차하는 참여적이고 유동적인 형식을 지닌다. 이 전시는 그 구조를 단순한 전통이 아닌 하나의 기록 기술이자 매체적 실천으로 재해석한다.

박슬기 작가는 실제 꽃과 사물을 3D 스캔하고, 디지털 환경에서 변형한 뒤, 다시 회화로 옮기는 작업을 통해 이미지의 생성과 재현, 그리고 존재 조건을 질문한다. 그의 작업은 자연을 재현하는 대신 ‘자연스러움’이라는 감각 자체를 흔들며, 디지털 이미지의 불안정성과 회화의 물질성을 긴장 속에 놓는다. 특히 이번 전시는 ‘집(안채)’이라는 물리적 공간과 ‘ZIP’이라는 디지털 압축 구조를 연결하며, 여성의 기록 방식과 동시대 기술 사이의 관계를 미디어 고고학적 관점에서 탐색한다.

exhibition

박슬기 개인전 《화전가》
2026.04.04 -04.26.
공간:일리

/전시기획 및 글 – 황수경
/코디네이터 – 박상은
/코디네이터 – 박상은
/전시운영 – 김해찬
/포스터디자인 – 이범희
/사진기록 – 박재영
/주최,주관 – 공간:일리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창작주체

박슬기 작가는 회화를 통해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시각을 단순히 비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들을 억압하는 사회적 규범들에 일탈하려는 시도를 작품을 통해 선보입니다.

”PII:JA“는 한국어 ‘피자’의 발음을 그대로 영어로 옮긴 제목으로, 전시의 다층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피자가 갖는 여러 가지 중의적 의미를 바탕으로, 현대 사회와 문화 속에서의 복잡성과 다면성을 탐구합니다. 피자라는 단어는 단순히 음식을 의미하는 것 보다, 납작한 원형의 형태와 다양한 재료의 조합으로 인한 무한한 가능성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상징을 통해 박슬기 작가의 작품에서 다루는 꽃이 피어나고, 지는 시간성과 압화를 통한 압축성의 밀접함을 꽃을 통해 피워 낼 예정입니다.

박슬기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피자 PII:JA‘라는 제목 아래, 여성으로서의 다양한 경험과 감각의 층위를 꽃이라는 소재를 통해 탐구한 작품들로 선보입니다. 동일한 발음으로 연상할 수 있는 피자(Pizza)의 원형 형태는 삶의 순환과 끝없는 반복을 상징하며, 작품 속에서는 개인의 일상, 감정의 주기, 그리고 사회적 현상의 지속적인 흐름을 은유합니다. 이번 전시에는 특히 2021년 《규중칠우쟁론기》 릴레이 개인전에서 선보인 <시듦>의 함축적 시간의 의미부터 2023년 개인전 《ZIP》까지, 꽃을 통해 표현하는 작가의 작업 세계를 피자(Pizza) 위 납작하고 다양한 토핑처럼, 담아내고 펼쳐냅니다. 또한, 전시 제목인 ‘피자 PII:JA’의 발음에서 느껴지는 발랄함과 경쾌함을 통해 꽃을 그리는 작가의 의도를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해석하며, 다양한 아름다움들이 어울려 꽃피우는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작가의 의지를 담았습니다.

이러한 《피자 PII:JA》라는 전시 제목을 통해 꽃을 그리는 행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성주의적 함의를 탐구하고자 하는 이번 전시는, 피자가 제공하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처럼 박슬기 작가의 작품들이 관객들에게 각자의 경험과 연결될 수 있는 다양한 해석을 제공하며, 일상 속 미처 깨닫지 못한 아름다움과 깊이를 재발견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관객들과 함께 피고 지고, 피고 지는 꽃처럼 늘 일상 속 새롭게 피어나는 삶에 다채로움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exhibition

박슬기 개인전 《피:자 PII:JA》
2024.09.14. -10.13.
서호미술관 본 전시장, 서호서숙 한옥별관

/협력기획 – 황수경
/비평 – 이연숙(리타)
/코디네이터 – 박상은
/주최,주관 – 서호미술관, 경기도, 남양주시
/포스터디자인 – 이범희

《그림 같은 집》은 삶의 소중한 최소 단위인 ‘집(HOUSE)’과 강보라, 박슬기 두 작가의 ‘자기만의 방’에 초대한다는 컨셉 하에, 동음으로 발음되는 압축을 뜻하는 ‘집(ZIP)’을 확장하는 전시이다.

이번 전시는 앞서 2022, 2023년에 열렸던 강보라 개인전 《Cosmic Dust》와 박슬기 개인전 《ZIP》에 이어지고 결합한 2인전의 형태로, 두 작가의 압축(ZIP) 감각을 집(HOUSE)이라는 공간을 통해 펼쳐낸다.

전시는 세검정 공간:일리가 아닌 삼청동 아트공간(artGONGGAN)에서 진행되는 팝업전시로, 또다른 집과 같은 형태의 외부 공간에서 두 작가의 홍보와 마케팅에 중점을 두고 진행하는 공간:일리(space illi)의 팝업전시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라는 옛 대중가요 가사처럼, 대중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가길 희망하며 기획되었기에 네트워킹 프로그램 또한 예술계 안이 아닌, 예술계 밖, 대중과의 네트워킹을 시도하고자 한다.

강보라, 박슬기 두 작가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자 기획된 이번 팝업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이 예술을 친근하게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나아가, 신진작가들의 예술 활동을 후원하는 소장의 경험까지 연결될 수 있는 전시로 진행되기를 기대해 본다.  ■황수경 (공간:일리 운영, 독립기획)

ZIP, 납작함의 변신―생동하는 가능성과의 감각적 숨바꼭질 중 결론 발췌

그런 조화에게 [일종의 애씀으로서] 자신의 체온을 나눠주고 싶었다”는 작가의 참신한 발상과 시도는 숨바꼭질에서 숨는 자의 역할을 맡은 술래의 마음과 닮아있지 않은가? 그런데 술래를 자청한 작가가 찾은 것은 ‘억눌린’ 결과로서의 존재가 아니라 그 눌림 아래 집약적으로 응축된 가능성을 품은 과정으로서의 존재이다. 무한한 변용 가능성을 품었기에 어떤 모습으로든 변신(metamorphosis) 할 수 있다. 눌리면 눌릴수록 더 높게 뛰어오르는 용수철처럼 납작함은 농도 짙은 팽창을 기대하게 한다.
이러한 점에서 박슬기 작가는 납작한 존재 내면에 숨어있는 생동하는 가능성을 찾아냄으로써 숨기의 의미를 완성시키는 작가이다.

돌 역시 마찬가지이다. 작품 속 조화와 돌은 단순히 대상이 아니라 작가와의 숨바꼭질을 가능하게 하는 교감하는 존재이자 놀이하는 존재이다. 때로는 시각으로( ‹자연스러운 그림› , ‹조화로운 그림› ), 때로는 촉각으로( ‹데운 돌› ) 감각한 눌린 존재들과의 교감이 작품 안에 담겨있다.어쩌면 이 존재들은 내면의 변신 가능성을 알아봐 줄 누군가를 은밀히 기다리기 위해 숨어있던 것은 아닐까? 마치 술래를 피하면서도 내심 술래가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를 희망하는 것처럼 말이다. 평평함 속의 풍부함, 멈춤 속의 생동성, 냉기 속의 온기, 색 바램 속의 생생함.

이번 전시에서 박슬기 작가의 압축감각(ZIP)은 공존할 수 없으리라 단정 지은 것들이 기실 공존하고 상호 보완적 관계임을 감각하게 한다. 박슬기 작가가 펼치는 납작함의 변신 이야기는 무감각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감각을 일깨우는 숨바꼭질에 참여하라는 일종의 초대장이다. 이 초대를 따라 압축을 뚫고 나오는 가능성을 감각해보자.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 김지은 (비교인문학)

exhibition

강보라 박슬기 2인전 《그림 같은 집》
(Picturesque House : HOUSE & ZIP)
2024.09.04. -09.13.
artGONGGAN 아트공간

/네트워킹 프로그램 -안진국(미술평론), 김지은(비교인문학)
/디자인 – 신상아
/사진 – 지희경
/영상설치 – 올미디어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 (재)예술경영지원센터

exhibition

박슬기 개인전 《생쌩생쌩한 꿈》
2024.03.27. -04.07.
CN 갤러리

/후원 – CN갤러리, 충청남도, 충남문화관광재단
/포스터디자인 – 이범희

전시 <ZIP>에서 박슬기는 꽃과 돌멩이들을 물리적/디지털적으로, 혹은 물성을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납작하게 만들어 다시 재현하는 정물화 시리즈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사회가 체화한 권위적이고 딱딱한 감각-플랫랜드의 권력층-을 압축시켜 현실을 반어적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세미나

< 다차원 세계로의 여행: 《플랫랜드》와 <ZIP>의 압축 감각 >

1884년에 출간된 에드윈 A. 애보트의 SF소설 《플랫랜드》는 0차원 세계에서 출발하여 4차원 세계로의 이동을 다룬다.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면에서 입체로의 나아감은 차원의 변화이면서 동시에 그 세계를 바라보고 인식하는 경험의 획기적 변화이다. 인식의 변화를 카오스가 아닌 도약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눌린 존재에 대한 재조명이다.
본 세미나는 정형화된 2차원의 납작함에 문제를 제기하는 《플랫랜드》와 박슬기 작가의 <납작한 세상 zip>을 겹쳐 읽음으로써, 압축에 대한 감각을 논의한다. 평평하게 압축된 것은 외부 힘에 힘없이 짓눌린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다차원의 세계로 나아갈 폭발적 힘을 잠재적 형태로 품고 있는 생동하는 존재임을 함께 나눈다.

강사: 김지은. 경희대 영미문화전공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여성과 생태, 문학에 관심을 갖고 활동 중이며 그 일환으로 《식물의 사유》, 《악어의 눈》, 《영화와 문화냉전》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hibition

박슬기 개인전 《ZIP》
2023.10.14 -10.29
아티스트런스페이스 쇼앤텔
다각형 예술공간 색의 곳

/전시기획 – 황수경
/세미나 – 김지은
/VFX아티스트 – 이범희
/그래픽디자인 – 이예슬
/공간디자인 – 그린레벨
/촬영 – 양이언
/후원 – 서울문화재단

기획자의 글 

    어쩌다 보니 이야기를 짓고 있는 나에게 시간의 실을 감은 실타래 하나가 있었다. 타래에 감은 실을 보니 서로 다른 질감과 색들이 한데 감겨 있음을 알게 되었고, 다시 그 색실들을 하나하나 풀어 꿰고 원형 수틀에 천을 팽팽히 잡아 수를 놓아볼까 한다. 전시는 ‘과거’의 한글 수필 작품 『규중칠우쟁론기』의 서사 방식을 빌려 ‘지금’에 풀어 수를 놓는다. ‘나중’의 그 모양이 심히 궁금한 이 전시는 하나의 자수처럼 꿰어놓았으나 일곱 여성의 감각을 기저로 하여 표현 감정이 출현하고 그들만의 독자적인 미적 감정을 펼치며 이어가는 각각의 개인전이다. 

   전시는 6월 김성미 작가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박슬기, 강보라, 강현아, 강유정, 정민주, 그리고 문상훈 작가의 개인전이 있는 10월까지 이어지는 긴 여정의 기록이며, 전시를 시작하는 글은 김지은 (에코페미니즘, 페미니즘SF) 연구자가 썼고 전시를 마치는 글은 김소원 (성북문화재단) 학예연구사가 쓰기로 하였다.  ■황수경

서문

    여성과 세계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여성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고 여성의 손으로 세계를 어루만져 만들어나가는 지난한 작업은 남성 중심적 사고관과 예술관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감각으로 세계를 이해해나가는 앎의 과정이다. 이러한 구분과 작업은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 성을 고정불변의 요소로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일한 지배적 성으로 자리 잡은 남성중심주의로부터 탈피하여 기존 체제에 균열을 만들고자 하는 창조적 행위이다. 권력 지향적 남성중심주의가 거대 담론과 총체적 비전에 총력을 기울인다면, 여성은 그 담론과 비전에 포함되었지만 동시에 배제되어 있는 존재들에 눈길을 돌린다. 그 존재는 여성이자 소수자이고, 동물과 식물을 포함하는 비-인간이자, 일상 속 사물이기도 하다. 

   전시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구성하고 있지만, 온전히 조명되지 못하거나 그 가치가 폄하되어 온 존재들을 여성의 감각과 감수성으로 살펴보고 풀어내며 소생시키고자 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이를 위하여 본 전시는 작가와 연대 미상의 한글 수필 작품인 『규중칠우쟁론기』의 서사 방식을 차용하되, 이를 현대적 맥락에서 예술적으로 변용한다. 『규중칠우쟁론기』가 옷을 만드는 규방의 일곱 가지 소품들에 목소리를 부여하여 제각기 자신의 공을 내세우게 함으로써 당대의 세태를 비틀어 풍자하였다면, 본 전시는 소비와 지배의 논리 속에서 소멸되고 소진되어 버린 듯하지만, 일상 속 묵중한 방식으로 잔존하는 여성의 감각과 감수성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위해 7인의 여성 작가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시를 이어나간다. 김성미 작가, 박슬기 작가, 강보라 작가, 강현아 작가, 강유정 작가, 정민주 작가, 문상훈 작가가 만들어내는 일곱 가지의 이야기는 황수경 기획자와의 협업 아래 다시 하나의 이야기로 아름답게 뭉쳐진다. 각 전시는 개별 전시의 특수성이나 참신성을 앞 다투어 강조하기보다는, 앞선 전시와 뒤따르는 전시 간 보이지 않는 연관성과 유대에 의해 매순간 새로운 의미를 획득해 나아가니, 구성과 형성은 이 전시를 추동하는 또 다른 모티브이다.

   본 전시는 7인의 여성 작가와 1인의 여성 기획자에 의해 세상과 조우하지만, ‘여성’만을 위한 배타적 예술은 지양한다. 화려하거나 돋보이지는 않더라도, 서로에게 속삭이듯 품어주는 전시 속 연대와 전시 간 연대는 성과 젠더에 구애받지 않고, 나와 다른 존재를 엮어내는 돌봄 과정의 연속이자 연장이다. 그러므로 본 전시는 가부장적 사회가 추동하는 위계 질서적 관계 맺기와 여성에게 강요되었던 희생으로서의 돌봄이 아니라, 생명을 자본의 논리가 아닌 생명 그 자체로 바라보고, 현재를 온전히 ‘현재’로 느낄 수 있는 여성의 섬세한 감각과 찬찬한 감수성을 전달한다. 이러한 작업은 여성 작가와 여성 기획자의 손에 의해 개시되지만, 이 전시에 공감하는 자들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여성의 감각과 시적 언어로 여성과 생태의 다층적 관계를 조망하는 본 전시 내에서 개별 전시는 서로 다른 결로 일렁이는 파동이지만, 각 전시는 한데 모여 여성의 서사를 직조해나가는 과정이라 하겠다. 이러한 점에서 7인의 여성 작가들이 전개하는 본 전시회는 여성의 공간으로 일컫는 규방의 7가지 소품을 의인화한 『규중칠우쟁론기』의 현대적·예술적 변용이다. 종결되지 않은 미완의 열린 서사가 공간:일리에서 서로의 개입과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김지은

exhibition

7인 릴레이 개인전 《규중칠우쟁론기》
두 번째 이야기
박슬기 《시듦》
2021.6.26 -7.10
공간:일리

/전시기획 – 황수경
/서문 – 김지은
/평론 – 김소원
/포스터디자인 – 김박현정(김박사스튜디오)
/참여작가 -김성미 박슬기 강현아 강유정 정민주 문상훈 강보라

‘모르는 밤‘ 이라는 메아리

여기 모르는 밤이 있다. 평범과 보통의 이름으로 살아 있는 낮의 시간과, 그것으로부터 거리를 둔 채 새까맣게 잊혀진 밤의 시간.

이번 전시 <모르는 밤>에서의 박슬기의 회화 작업들은 2013~2017년에 제작한 것들로, 대부분이 전시를 통해 발표된 적이 없다. 당시에 박슬기는 미술계에서 두각을 나타내지도, 스스로 기회를 만들지도 못했다. 한 마디로 본인을 포함하여 누구든 작업을 알아봐 준 적이 없으니, 이 화화들은 구작이면서도 신작인 셈이다. 박슬기는 이렇게 애매한 포지션으로 은박 포장지에 박스테이프로 꽁꽁 싸매진 채로 있는 듯 없는 듯 작업실에서 잠자고 있던 몇년 전 작업들을 깨웠다. 모르는 밤을 호명했다.

이범희는 일상속에서 일반적인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 작은 들꽃이나,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는 사물,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깊은 애정을 가진다. 그렇게 대상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실험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해왔다.

그런 그는 박슬기의 밤의 세계의 거의 유일한 관람객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를 통해 박슬기의 죽어 있던 회화를 말 그대로 ‘움직이게‘ 한다. 모르는 밤의 틈새로부터 이미지를 불러내고, 흩어지게 하고, 낯설게 한다.

지난했던 밤의 세계는 몇 년 만에 그에게 부딪쳤다가, 되울린다. ‘모르는 밤‘ 이라는 메아리로.

■앗

exhibition

모르는 밤
앗 콜렉티브
박슬기X이범희
2020.12.14 – 12.27
Gallery A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남성중심적 사고관은 여성에게 한 인간 존재로서의 이름은 지우 고 역할 규범으로서의 딸, 아내, 며느리, 어머니의 책무를 강요해왔다. 단장, 조신, 희생, 헌신의 덕목은 미덕이라는 미명 하에 그 모습을 감추며 불합리하고 불평등한 구조를 양 산해냈다. 이러한 사회적 규범에 의해 여성은 타자를 위해 존재하며 타자의 시선을 통 해 존재 의미를 되새김한다. 박슬기는 이러한 개인의 사사로운 경험과 기억들을 모아 예술이라는 공공적 담론의 장을 구성한다. 예술의 범주 안에 속하게 되면 특별해지고, 기억되고 반복될 수 있다는 특성을 이용해, 멀리서 찾아온 경험이나 사건보다도 일상 속에 혼재한 여성으 로서의 무게와 고민을 나눔으로써 자신을 설명할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한 채 잊혀 가 는 이들을 위로한다. 작가는 모순적인 현실 속에서 다양한 사회적 역할을 부여받고 살 아가는 여성들이 그 사이를 무한 왕복하며 머뭇거리는 수많은 이야기를 기억해내어 캔 버스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는 자신과 같은 삶을 살아 내고 있는 존재, 사회 속에서 쉽게 범주화되고 대상화되는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에 주목하여 사회와 여성 스스로 만들 어낸 스테레오타입을 극복하려는 시도의 작업들을 선보인다. 고무장갑을 낀 손의 제스처에 초점을 맞춰 조명하는 〈밝히면서 밝히기〉 (2018)에서는 김치를 담글 때 붉은 물이 들어도 표시나지 않고자 선택된 분홍색 고무 장갑 고유의 색을 인위적으로 삭제하고, 그 상징을 모두 거두어낸 형태로 등장시킨다. ‘마미손’이라고도 명명되는 고무장갑은 가사노동에 헌신하는 여성의 전유물이다. 작가 는 성 역할 고정관념이 덧씌워진 고무장갑의 본래 속성을 벗겨 내고자 상징적인 빨간색 을 빼고, 이를 금기시되어 온 여성의 성적 욕망을 표출하는 도구로서 재가공한다. 핸드 잡(Hand Job)과 풋잡(Foot Job)을 연상시키는 신체적 제스처는 여성을 가사노동의 주체가 아닌 자신의 성욕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주체로서 내세우고 있다. 사회에서 요구 하는 여성상으로 인해, 여성의 욕망은 터부시 되었으며 문란한 것으로 취급받아왔다.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성적 주체로서 인정받지 못하며, 오로지 남성과 가정을 위한 존 재로 물화(物化) 되고 대상화된다. 주체성이 지워진 여성의 신체 역시 남성의 성적 욕 구 해소를 위한 수단이 되어왔다. 박슬기는 신체적 제스처를 통해 타자화된 삶 속 여성 이 몰래 숨겨야만 했던 소박한 소망을 밝히면서, 젠더 규범이 은폐한 여성의 욕망을 밝 힌다.

〈죽은 정물화〉(2018)는 다양한 사회적 지위를 가진 여성을 연기하면서 이들이 직 면하고 있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상 속 작가는 성을 억압하던 상징물들 과 여성을 혐오하고 조롱하는 데에서 비롯한 김치, 된장, 꽃, 뱀과 같은 정물을 선택 하여 이들에게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지만, 반복적으로 실패하고 좌절과 절망으 로 종결하게 된다. 이미 생명이라는 것이 의미 없어진 대상들을 묘사하는 정물화에 다시 한번 죽음을 선언함으로써, 좀비처럼 계속해서 여성에게 살아 돌아오고, 꼬리 표처럼 따라붙는 대상들을 영원히 지우려는 시도를 반복한다. 이는 결국 현대 여성 이 기성세대와 다를 바 없이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여성을 억압하 는 사회적 규범으로부터 완전히 탈피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 가는 비참하고도 참혹한 이러한 시도의 결과물을 캔버스에 재현하여 두 폭의 대형 제단화를 만들어낸다. 계속해서 살아 돌아오는, 이미 죽은 이 정물화들에 또다시 죽음을 선고하고 이를 ‘죽은 정물화’라 명명함으로써 자기 위안을 얻고자 한 것이 다. 결과적으로 사회가 만들어낸 여성상, 여성의 역할로부터 온전하게 자유로워지 지 못하지만, 벗어나고자 끊임없이 노력한 시도는 작가 자신을 비롯한 여성에게 심 심한 위로와 격려로 다가오게 된다. 박슬기는 살아가는 존재로서 겪었던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경험, 자신이 겪거나 타인에게서 들은 살아내는 자들의 기억을 흘려보내지 못하고 작업에 녹여 내어 나와 우리, 모두를 향한 공감과 위로를 건넨다. 이들의 삶은 누군가에겐 지극 히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이며 동시에 숨통을 조이는 답답한 삶이다. 이처럼 개인 을 둘러싼 경계는 자신의 위치로부터 발현되어 체감된다. 작가는 활동가나 운동가 가 아니라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과 안주하고자 하는 마음이 뒤섞인, 경계에 놓인 이로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위드유(WithYou)라 일컫는 여성 연대 운 동은 현대 사회 조직·집단 내에 만연하고도 은폐되어 왔던 여성의 성도구화 문제 를 가시화했다. 작가는 이러한 연대적 의식을 바탕으로 성적 대상으로 소비되는 여 성들의 존재를 다시 그리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놀이와 욕망의 대상이 아닌, 사회 적으로 규정된 정체성에 속박되지 않은, 위계적 힘의 구조와 상관없이 삶의 자기 결 정권을 지닌 존재로서의 여성을 말이다. 개인의 경험을 이야기하는듯하지만, 박슬기는 결국 서로 지지하고 연대 하며 또 다른 우리를 응원한다. 작가의 작업으로 이 세계가 완전히 바뀔 수는 없을 것이며 우리는 또다시 매일 실패하는 일상을 살아가겠지만, 예술가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 존재이기에, 필시 실패할지 모르는 지금을 그려내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책무가 무망한 시도들을 멈추지 않는 것임을 되새 기며 ‘정상적’으로 여겨왔던 위계적 힘의 구조에 작은 파장을 일으켜 나간다. 또한 그는 이러한 파장이 모여 견고한 남성중심의 천장에 자그마한 흠집을 내기를 염원 한다. 다수의 약자가 함께 만들어낸 이 작은 균열은 정상성이라는 경계의 벽을 허 무는 하나의 ‘틈’이며, 주류사회를 전복시킬 수 있는 ‘구멍’이자, 결국 해체에까지 이르게 하는 사소하고도 거대한 ‘힘’이 될 것이다.

◼︎권혜준

exhibition

나의 둘레는 멀고도 가까워서
동덕여자대학교 큐레이터학과 제 20회 졸업기획 전시
무니 페리 박슬기 이지양X유화수 이해민선
2020.7.1 – 7.7
온수공간

프로젝트 스페이스 영등포는 2020년 6월 12일부터 6월 30일 까지 박슬기 작가의 “바 람 난 사 람”을 개최한다.

박슬기 작가는 한국 사회의 여성의 인권과 폭력의 문제를 오랜 시간 동안 페인팅, 설치, 퍼포먼스 등의 다양한 실험을 통하여 풀어내고 있다. 그 실험의 방법들은 과히 충격적이기도 하고 로맨틱 하기도 한데, 그 대표적인 예로 <러브레터>2019를 들 수 있다.
<러브레터>,2019는 작가가 직접 “소녀(채팅아이디)”가 되어 3개월 간 랜덤채팅의 실태를 체험하고, 실제 청소년 성 매매가 이루어지고 있는 랜덤채팅 안에서, 성 구매자들에게 받은 구애의 말들을 풀실, 자수, 영상으로 시각화한 작업이다.

작가는 사이버상에서 이루어지는 미성년자 대상의 상업적 성 착취와 그루밍 성폭력에 대한 문제를 반어적 언어의 선택, 즉 작품에 등장하는 “♡”, “사랑”등의 상투적인 관념을 통하여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바 람 난 사 람”이다. <바 람 난 사 람 (Hope, I am a Person)>,2019는 2019 년 한 해 동안 여성 대상 범죄 뉴스의 헤드라인을 수집하여 다시 해체 시킨 후, 온라인 상에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메시지들을 모아 그 위에 겹쳐 그것 을 다시 종이접기로 만든 기념비적 작품이다. 2000마리의 종이학이 담긴 유리병, “바 람 난 사 람” 이 수 놓아진 문발은 바로, “연약한 연대의 기념물” 인 것이다.

박슬기 작가는 다름아닌 자극적이며 직설적인 방법으로 한국 사회의 여성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통쾌함을 자아내는 해소의 지점을 만들어 낸다.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는 다시 한번 이 사회의 구조적인 폭력, 사회적 약자들이 처한 어둡고 잔인한 현실을 고발하면서 동시에, 폭력에 직접적으로 뛰어들지도, 무관심하지도 못하는 우리 자신 의 무력감과 희망 사이의 경계를 자각한다.

자신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채 지워지는 이름들과, 허락도 없이 규정되는 이름들 그리고 늘 주변에서 머물다 사라지지만 개별의 삶은 그럼에도 살아지는, 끝내 살아내는 존재들을 위무하는 그런 전시가 되었으면 한다. 

◼︎프로젝트스페이스영등포

exhibition

바 람 난 사 람
박슬기 개인전
2020.6.12 – 6.30
프로젝트스페이스영등포

나는 사회적 약자들이 얼마나 폭력적으로 범주화되고 대상화되는 지에 관심이 있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자존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끝내 시스템에 굴복하게 되는 무력감을 너무도 잘 안다. 고유한 인격과 정체성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누군가를 위한 대상 혹은 특정한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존재가 직면한 현실을, 역설적으로 사랑이라는 낭만적인 관념을 통해 말하면서 기득권적 시선과 폭력을 전복시키고 작품이 주체적인 의미로 작용하기를 소망한다. 

이 전시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일상에서 ‘사라지며 살아진, 그래서 살아남은‘ 너와 나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이다.

◼︎박슬기

exhibition

사라지며 살아진 너에게
박슬기 개인전
2019.6.1 – 6.13
예술공간 서:로

박슬기는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주어진’ 것들에 주목하고 이를 주체적 표현의 도구로 전환한다. ‘꽃뱀’, ‘김치녀’, ‘된장녀’, ‘김여사’ 등은 모두 여성을 싸잡아 폄하하는 여성혐오의 표현인데, <죽은 정물화>는 ‘붙여진’ 이름들을 연상하는 뱀과 김치, 된장 등의 소재를 정물로 두고 사실적으로 그린 작업이다. 타자화 된 수동의 언어들을 정물로 취급하여 발랄한 색채와 어두운 배경, 풍선과 가위, 수직 구도의 긴장감 가득한 상황에 놓아 자의적으로 재구성했다. 박슬기는 이에 그치지 않고 가부장제 속에서 당연하게 생각했던 가사노동의 대표적 도구를 자신의 성적 욕망을 위한 도구로 다시 읽는다. <밝히면서 밝히기>는 고무장갑의 속성을 제거, 탈색하여 금기시되었던 여성의 성욕을 드러내는 도구로 재가공한 후 손의 제스쳐를 통해 이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여성의 성적 욕망을 ‘문란한’ 것으로 취급해온 수동적 젠더 규범에 맞서고 있는 것이다.

◼︎공간 힘 큐레이터 김선영

박슬기의 <죽은 정물화>는 끊임없이 타자화되는 여성의 모습을 그린다.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와 가혹한 이중잣대 속에서 여성은 너무나 쉽게 김치, 된장, 꽃뱀이 된다. 정물화 속에 그려진 사물들이 사회 속 여성의 위치를 상기시키며 여성 관람객의 공감과 분노를 끌어낸다. 이와 동시에 작품 중앙에 배치된 가위는 발칙한 상상을 하게 만들며, 분노를 유머로 승화시킨다. 이 유머러스함은 다음 작품 <밝히면서 밝히기>로 이어진다. 그는 고무장갑에서 색을 제거한다. 고무장갑의 분홍색은 여성의 색으로 여겨지는 색이다. 중앙일보 2002년 2월 23일 자 기사 「고무장갑이 붉은 이유는」에 의하면 한국에서 고무장갑은 김치를 담글 때 사용하기 때문에 빨간색 또는 분홍색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고무장갑의 색은 여성의 가사노동 그 자체인 것이다. 작가는 고무장갑에서 분홍색을 제거함으로써 그 속에 내포된 가사노동과 성별 이분법, 고착화된 성 역할의 의미 역시 제거한다. 사회적으로 강요된 의미들이 사라지자, 제스쳐는 강력한 성적 함의를 드러낸다. 또한 집이라는 공간은 가사노동의 장에서 내밀한 사적 공간으로, 고무장갑을 낀 여성은 성적 욕망을 표현하는 적극적 주체로 변모한다.

◼︎전 킴스필드미술관 큐레이터 장지원

exhibition

우리는 서로에 의해 허물어진다
권세정 박슬기 정아람
2019.6.19 – 7.7
공간 힘

여성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나의 고군분투와 자존에 대해 말하고 싶다. 내 목소리는 너무 쉽게 지워지고, 이름은 내 허락도 없이 그저 주어진다.

나는 끊임없이 지워지고 주어지는 것들과 씨름하지만 끝끝내 좌절한다. 그럼에도, 내가(네가) 경험해 온 반복적인 실패들을 단지 비극으로 끝내지 않기 위해서 찾아내어 위무할 것이다. 소외된 목소리를, 사소하지 않은 언어를, 결코 평화로울 수 없는 일상을.

◼︎박슬기

exhibition

없는, 오늘
박슬기 정철규
2018.12.10-12.30
단원미술관 2관

합리적 현실의 균열

우리는 합리성을 기반으로 한 일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박슬기, 이범희 작가는 합리적 현실에 균열이 생겼을 때, 이 균열을 통해 무의식의 차원에서 현실과 관계하는 은밀한 삶의 영역이 있다고 믿는다. 이 은밀하고도 무의식적인 욕망은 보이지는 않지만 정신의 수면 밑에 잠겨 있는 아주 역동적인 심층이다. 우리의 조용한 일상은 이러한 욕망의 끝없는 동요에 의해 떠받쳐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현대인은 무의식적 욕망을 곧바로 드러낼 수 없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그 때문에 무의식적 욕망은 합리적인 관점에서는 그대로 수용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이미지들로 남아있다. 그러나 합리적 현실의 신뢰성이 적어지고 그 균열이 심각해졌을 때, 일상의 규범이 비일관성을 드러내는 틈새에서는 전복적인 힘으로 활성화된다. 이 때 우리는 틈새로부터 나와 틈새를 메우는 환상적 이미지들을, 그 비현실성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받아들인다.

확대된 ‘틈’

박슬기, 이범희 작가는 일상의 균열을 오히려 확대해서 보여주는, 합리화가 불가능한 환상을 표현하고 있다. 작품을 통해 표면과 이면의 불일치가 공존하고, 표면에서 제외된 것이 이면에서 다시 나타나는 어떤 아이러니를 보여주고자 한다. 두 작가는 합리적 현실을 경험하는 중, 동시에 합리적인 상식을 전복시키는 양가성의 시선을 제공하면서, 이를 통해  관람자가 언캐니한, 기존의 명료한 정서적 개념들의 ‘틈새’로 빨려들어가기를 소망한다.

박슬기 작가는 작가 본인이 갖고 있는 ‘성 금기’와 그것이 가진 양가적 감정을 집요하게 고민한다. 작가는 성적으로 굴복해야만 했던 유년시적의 수치스런 기억으로부터 밀려드는 자책감을 해소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자학적인 성적 이미지를 재현해야만 했다. 그것을 본인의 가장 큰 금기로 여기면서도, 그에 대한 공포와 죄책감은 동시에 그것을 위반함으로써 얻게 되는 만족들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금기의 위반’ 을 곧바로 드러낼 수 없는 세계에서 그 위험을 통제하기 위해 작가는 화면을 ‘기획’하고, ‘연기’한다. 화면 속 오브제들은 본연의 역할은 잊고 작가가 심어놓은 알레고리를 품은 채 화면에 배치된다. 어울리듯 어색하게, 세심한 듯 거칠게, 유희적이면서도 고통스럽게.

작가는 이렇게 도무지 합리적일 수 없는 양가적 세계를 ‘윤리적 폭력’ 이라 표현하면서 여러 장의 드로잉과  움직이는 애니메이티드 드로잉으로 구현하고 있다.

이범희 작가는 늘 보던 것들 또는 매우 일상적인 상황이나 사물에서 ‘문득’, ‘어느 날 갑자기’ 느껴지는 어떤 낯설음, 생경함에 주목한다. 익숙한 것이 왜 불현듯 낯설음으로 다가오는 걸까? 일상이 왜 ‘일상적이지 않게’ 되어버린 걸까? 이러한 환상적 경험이 그저 ‘덧없는 것’ 일 뿐일까?

작가는 저마다의 불안을 감추고 비슷한 매일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시선에서 이 낯선 풍경과 감정을 풀어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낯설음을 ‘ 합리적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어떤 재미요소’로 규정하고 있다.

즉, 어쩌다 한번씩 갑자기 다가오는 일상의 균열 덕분에, 이 균열의 양가적 시선 덕분에 일상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화면 속 인물은 일상의 규칙을 토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일상은 어긋나고, 우리는 잠시 환상에 발을 담근다.

작가는 본인의 일상에서 벗어난 환상적 경험을 삼차원을 기반으로 한 실험애니메이션으로 녹여내었다.

◼︎박슬기

exhibition

틈
박슬기 이범희
2018.2.20 – 3.3
공간:일리

exhib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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