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회화의 차원 : 시적인 탐구
Paintings and Dimensions :
A Poetic Exploration
: 황수경 ( 독립기획 )
이번 글을 통해 박슬기 작가의 작품 중에서도 꽃을 주제로 한 작가의 작업 활동을 중심으로 <ZIP> 전시에서의 차원과 회화를 시적 탐구로부터 재현하는 작가의 예술적 접근 방식을 강조해 보고자 한다.
박슬기는 2018년 <밝히면서 밝히기 (reveal and reveal, 2018)>를 통해 가사노동의 상징인 고무장갑의 색과 함께 내포된 성별 이분법, 고착화된 성 역할의 의미를 제거하고 사회적으로 강요된 의미들이 사라진 적극적 주체로서 고무장갑을 재조명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같은 해 <죽은 정물화 (dead still life, 2018)>로 다양한 이름으로 살아가는 작가의 고군분투와 자존에 관한 이야기로 끊임없이 타자화되고 대상화되는 여성의 위치에서 일탈의 염원을 퍼포먼스와 정물화로 표현하였다.
2019년 예술 열차 안산선(안산역)에서 진행한 커뮤니티 프로그램인 <N 송이의 꽃 N 개의 모양> 팀 프로젝트를 ‘앗 (박슬기, 이범희)’이 기획했다. “꽃과 같은 당신을 위한 그림”이라고 정의 내린 이 프로그램은 다문화적 지역성을 지닌 안산에서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배제되거나 소외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소중하고 고운 것을 지칭할 때 흔히 ‘꽃 같다’는 말에서부터 다양한 개개인들을 꽃에 비유하였다.
2021년 <꽃들에게 언어를 주자 (give the flowers a language, 2021)>는 메타 휴먼 크리에이터(Meta Human Creator)를 활용해 백 명의 가상 인물들을 만들어 낸 후, 실제 인물의 얼굴을 모션캡쳐(motion capture)해 ‘나는 꽃이 아니다’, ‘나는 꽃이다’ 라는 두 문장을 가상의 인물을 통해 발화한 작업이다. 이 작업의 사운드로 삽입된 텍스트 작업인 <아무 일 (A, No, Thing, 2021)>에선 꽃에 다시 이름을 선물하는 마음으로 시를 썼다. 그리고 박슬기는 2021년 <여/성.화 (female/sex.painting, 2021)>를 통해 본격적으로 꽃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이는 미술사에서 유구한 주제로 다뤄지는, 전형적인 ‘여성적’ 영역으로 간주된 꽃에 관한 본격적인 탐구인 동시에 시를 통한 함축적 감각을 회화의 차원으로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는 꽃을 입체적으로 감각하려는 노력에 대한 의미를 탐구하며 대상화와 내면화 사이에서 자기 자신으로 불리고 싶은 꽃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리는 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여성스러움’ 이 수시로 납작해지는 일들을 관찰하고, 고착되고 진부한 단어들로 경계를 허물며 차원을 감각하려는 자신만의 방법으로서 ‘압화’를 선택하게 된다. 납작해진 차원에서 다층적인 감각을 향해 함축적인 언어인 시를 쓰며, 꽃들에게 언어를 주고 그들을 불러내는 수행적 작업을 통해 세상의 모든 꽃들에게 위로와 연대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ZIP>은 이러한 작가의 작업 과정들을 통해 박슬기 작가의 작품과 에드윈 A. 애보트의 SF 소설 <플랫랜드>를 연결하여 차원과 회화의 재현, 그리고 차원의 변화에 대한 비평적 시각을 다루고 차원의 개념을 탐구하며, 2차원의 납작한 형태를 통해 다차원의 아름다움과 다양성을 강조하고자 기획한 전시이다. 사회적 편견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한 작가의 회화 작업은 꽃과 돌멩이를 납작하게 만들고, 다시 재현하는 회화 작업을 통해 권위적이고 딱딱한 감각을 압축시켜 현실을 반어적으로 드러낸다. <플랫랜드>에서 여성을 납작한 형상으로 폄하하는 사회적 편견을 비판하고 2차원의 납작함에 문제를 제기하며 차원의 변화를 주장하는 내용과 박슬기의 작업이 서로 부합한다는 점에서 작가의 회화인 ‘압화’와 언어인 ‘시’를 통해 함축적인 탐구로부터 회화로 재현하는 작가의 예술적 접근 방식을 관찰하며 기획한 전시이다.
전시는 예술과 기술의 차원에 관한 확장을 다루고자 하는 의도도 담고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뉴미디어로 확장하는 동시대 미술에서 고전적 미디엄인 회화와 접속하는 과정을 융합으로 본다면, 다양한 미디어와 결합하여 창조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예술과 기술이 융합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고전적인 회화와 함께 다양한 예술 형식과 상호작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박슬기 작가 또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1차 재현하고 이를 회화로 다시 재현했다. 이는 다차원적인 작품으로 확장-제작 가능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차원의 관점으로도 접근할 수 있다. 작가는 이러한 시도를 이미 실험하고 진행한 바 있다. 사회현상과 개인의 이야기를 회화에서뿐만 아니라 설치, 영상, 애니메이션을 통해 표현하며, <ZIP> 전시에서는 납작해지는 관념과 대상을 입체적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했다. 이를 통해 차원과 회화의 관계를 탐구하고, 다차원의 세계로의 여행을 시각적으로 나타냈다. 시각적으로 압축하여 제시하는 회화는 차원의 변화와 다차원적 경험을 강조하며, 납작한 존재의 재조명과 압축에 대한 감각을 논의하고 있었다.
또한 작가의 작업을 서양 회화론에서의 재현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입체감을 캔버스에 부여하는 재현은, 현실적으로 보이게 하므로 입체감이 본래의 차원인 캔버스를 벗어나 시각적 표현을 확장해 복잡한 시공간적 관계를 효과적으로 나타낼 수 있다. 또한 재현이라는 것이 하이퍼리얼리즘 (Hyperrealism)처럼 최대한 현실적이고 디테일한 방식으로 사물을 재현하는 회화 양식으로 사실적인 빛과 그림자, 색감, 질감 등을 엄격하게 따르며, 작품이 실제 사물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정밀도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사회적인 역사와 상황을 재현하는 사실주의는 회화를 통해 현실의 사회적 측면을 자세히 탐구하고 표현하는 예술적 관점으로도 나타난다. 이 접근법은 작가가 사회적 주제나 역사적 사건을 회화를 통해 다양한 시각에서 다루고자 할 때 사용되는 데 사회적인 역사와 상황을 재현하는 사실주의 회화는 관객에게 사회적 문제와 역사적 중요성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고찰을 제공하며, 미술을 통해 사회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시대나 문화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사회적 변화와 여성에 관한 인식의 개선을 전달한다.
그렇다면 박슬기 작가의 회화에서의 재현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작가의 재현은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작가는 고전적인 회화 언어와 기법을 사용하면서도 이를 현대적 맥락으로 재해석하여 다차원적인 의미와 사회적 역사를 투영한다. 그의 작품은 사실주의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현대 사회와 여성의 경험을 담아낸다. 또한, 박슬기 작가의 작품들은 사실주의적인 재현을 통해 현실을 과장하거나 강조함으로써 현실의 상황과 감정을 더 강력하게 표현한다. 작가는 디테일과 색채를 통해 현실을 과장하고 감정을 더 짙게 나타냄으로써 관객에게 감정적 연결을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박슬기의 작품은 사회적 상황을 재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의 작품들은 여성의 경험, 사회적 편견, 성별 역할, 가사 노동 등과 같은 사회적 주제를 다루며, 그로부터 비롯된 감정과 경험을 회화로 재현한다. 다층적인 측면에서 재현과 재해석을 통해 다차원적인 의미를 제공하는 작업은 회화의 형식과 함축적인 언어를 통해 현대 사회의 복잡한 문제와 여성의 경험을 다양한 시각에서 탐구하며, 관객에게 예술을 통한 사회적 메시지와 감정적 연결을 전달한다.
차원은 물리학, 수학, 미술, 철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다양하게 해석된다. 물리학에서 차원은 공간과 시간의 차원을 의미하고, 전통적으로 세 가지 공간 차원(x, y, z)과 하나의 시간 차원(t)으로 이루어진 4차원 시공간이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이러한 차원은 물체의 위치와 움직임을 설명하거나 물리 현상을 모델링하는 데 사용되고 디지털 방식의 예술에서 사용된다. 수학에서 차원은 공간의 차원을 나타낸다. 0차원은 점, 1차원은 선, 2차원은 면, 3차원은 공간이며, 더 높은 차원은 이러한 개념을 확장시킨 것으로 고차원 공간은 벡터, 행렬, 텐서 등을 사용하여 다양한 수학적 응용을 가진다. 미술에서 차원은 공간적 차원으로 2차원 작품은 길이와 폭만 가지고 있으며, 3차원 작품은 높이, 깊이, 폭을 가지기에 회화는 주로 2차원 작품으로 분류되며, 입체 조각은 3차원 작품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을 통해 2차원 작품으로 분류되는 회화 또한 확장이 가능해졌다. 차원은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며, 그 의미와 응용은 해당 분야나 맥락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철학에서 차원은 종종 현실적이지 않은 또는 이성을 넘어선 영역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는데 4차원 이상의 차원은 종종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우주론적 이론과 관련이 있으며, SF와도 연결될 수 있다.
주체성이 지워진 여성과 여성을 상징하는 정물과 꽃을 선택하여 회화로 재현하는 작가는 결국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적 규범으로부터 완전히 탈피-일탈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캔버스에 재현하여 사회가 만들어 낸 여성상과 여성의 정해진 궤도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일탈을 시도해 우주라는 고차원으로 이끌며 나와 우리, 모두를 향한 공감과 위로를 전하고 있다. 정상 궤도라고 우기는 견고한 남성 중심의 차원에서 다수의 약자가 함께 궤도를 일탈하는 추진력을 가속화하는 작가는 결국 ‘집’이라는 공간과 ‘ZIP’이라는 압축 감각을 통해 길가의 돌멩이가 ‘나’의 손길에서 따듯한 온기를 품고, 꽃처럼 아름다운 ‘너’라는 존재로서 존중받고 조명되기를 회화를 함축적인 시적 탐구로부터 재현해 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