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바 람 난 사 람

: 박진희 (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

여성미술인 스스로가 여성의 문제를 드러내며 페미니스트란 이름으로 활동하기를 거북해하는 미술계에서 수창청춘맨숀 레지던시에서 박슬기 작가를 만났다. 박슬기는 당당히 여성 자신을 내세우며 최신의 페미니즘 담론을 다양한 매체실험으로 생성하는 젊은 여성작가이다.

그녀는 여성문제, 젠더이슈, 소수자 인권문제와 폭력 등을 주제로 페인팅. 퍼포먼스. 설치 등 다양한 매체실험을 해 왔다. 본인이 작가의 작품을 처음으로 본 매체는 유화(페인팅)이었는데 여성문제의 키워드가 되는 오브제들을 정물화로 그린 그림이었다. 세련된 색채와 전통 회화가 가지는 정물화의 구도를 차용한 작품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특히 작가 자신이 사회적으로 느끼는 사적경험을 작품의 소재로 쓰기도 했으며, 안산시 이주여성노동자들과의 인터뷰를 시각화하기도 하였다.(<나는(너는)언제나(한 번도)날 홀로(나인 적)남겨둔다(없었구나)>, 2018년), 그리고 청소년성매매의 온상인 랜덤채팅 어플을 체험하고 그 실태를 언어로 수집하여 작업(<러브레터>. 2019)으로 발표하기도 하였다. 박슬기 작가를 특히 주목하는 이유는 최근 여성문제, 소수자 문제 등의 폭력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사회현상에 리서치를 기반으로 적극 개입하며, 작업으로는 전복을 꾀하는 반어적 방법을 자유롭게 쓰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 발표되는 새 작업들의 주제는 ‘바 람 난 사 람’으로 대표된다.  여기에서 ‘바람’이라는 단어는 일탈을 의미하기도 하고 바램을 나타내기도 한다. 작품 <바 람 난 사 람_모뉴먼트>는 2000마리의 종이학이 유리병에 모아져 하나의 기념물이 되었다. 희망을 상징하는 종이학 안에는 작가가 올해부터 매일 수집한 수많은 여성문제 사건사고가 담겨 있다. 그 내용들은 여성문제 기사 헤드라인과 그와 관련한 위로의 댓글, 쪽지 등의 소통내용들이다. 작가는 “대항할 수 없는 폭력에 맞서기에는 연약할지라도, 의미 없어 보이는 익명의 소리들일지라도, 깨지기 쉬운 일시적인 응원과 연대일지라도 약자에 희한 기념비를 만들고 싶었다”고 하였다.

다음 작품 <러브레터>, 이 또한 예전 쉬폰 원단에 자수로 제작한 작업과 연결된다. 영상과 함께 남자의 유혹하는 말소리들이 흘러나온다. 말의 내용들은 작가 자신이 14-19세의 ‘소녀’ 라는 이름으로 세 달간 랜텀채팅 어플에 접속하여 성 구매자들에게 받은 텍스트를 수집한 것들이다. 수집된 말들이 이전 작업에서는 성매매를 연상하거나 음란한 단어들을 하트라는 기호로 변환되어 자수로 만들어졌다면 이 영상작업에서는 ‘사랑’ 이라는 달콤한 단어로 치환되어 남성의 목소리로 흘러나온다. 그리고 화면에서는 사랑의 기호를 상징하는 손동작에 반복적인 매듭이 씌워지고 있다. 마술을 부리듯 유혹하는 듯 손동작의 결과물은 하나의 작은 핑크색 덩어리로 남게 된다. 작가가 인지하는 현실은 사이버상의 상업적 성 착취 현장들이고 착취 대상이 되는 청소년들은 구조적 성폭력의 희생자들이다. 그러나 작가는 구조적으로 하위에 놓은 피해자들, 욕망의 대상이나 수단이 되는 약자의 잔인한 현실을 낭만적인 행위와 달콤한 단어로 꼬집고 있다.

  이번 전시는 이전과는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는 우리 사회의 여성문제를 비롯한 여러 구조적인 폭력들, 그리고 작은 소리들의 촘촘한 연대,  약자들에 대한 위로의 바램들과 고발을 직설적 화법으로 이야기하기를 뒤로 하고 달콤한 유혹(작품)으로 사람들을 자극시키는 동시에 다시 어두운 현실사회를 직면하게 하여 놀라게 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바는 박슬기 작가가 새로운 전략에 대한 요구가 언급되는 페미니즘 미술계에서 주목할 만한 이유가 된다.